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장 종단 봉기 (문단 편집) === 마에고르의 최후 === [[파일:Maegor I's Death.png|width=500]] 그러나 마에고르의 이런 잔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종단은 계속하여 봉기하였다. 탄압이 계속되던 와중 AC 48년 [[문 성사]]와 [[조프리 도겟]][* 마에고르에 의해 가족을 잃었으며 성도 파괴되어 가문이 몰락해버려서 복수귀가 되었다.]이 엄청난 수의 가난한 신자들을 이끌고 [[레드킵]]으로 진군하게 된다. 이들은 AC 50년 [[재해리스 1세|재해리스 왕자]]를 지지하며 마에고르를 끌어내리기 위해 더욱 많은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마에고르의 폭정에 질색한 귀족들마저 반란에 참가하게되자[* 중요한 원인은 마에고르가 부과한 높은 세금이었다. 왜냐면 종단의 봉기 뿐만 아니라 왕실에 대항하는 반란들을 진압한다고 돈을 워낙 많이 쓰는 바람에 왕실의 재정이 나빠져서 이를 해결하려고 부과한 세금이 평민들은 물론이고 여태까지 마에고르를 지지해준 귀족들까지 반발하여 적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온 나라가 마에고르에게 들고 일어선 상황이 되었다. 재해리스 왕자를 보호하던 [[바라테온 가문]]의 [[로가르 바라테온]]이 재해리스에게 호국경으로 임명되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반란이 본격화되자 라에나 타르가르옌은 [[드림파이어]]를 타고 막내동생에게 도주했으며, 소협의회의 최측근이었던 수관 [[켈티가르 가문|에드웰 켈티가르]]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킹스가드 두명마저도 마에고르의 학정에 질려 도주하고 만다. 특히 선박대신 및 제독 [[다에몬 벨라리온]]은 함대까지 빼돌려 재해리스에게 가담했다. 나중에 가서는 [[라니스터 가문]], [[티렐 가문]], [[아린 가문]]같은 [[대가문]]들까지도 대놓고 재해리스의 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마에고르의 몰락은 가속화되고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마에고르는 남은 충성파 영주들을 모조리 소집하지만 그 자리에는 국왕령 소영주 몇몇만이 참석하였을뿐이었다. 자신의 몰락을 깨닫게된 마에고르는 결국 마지막까지 작전회의를 짜다가 다음날 아침 [[철왕좌]]에 앉아서 손목이 그어진 채로 쓸쓸하게 죽은 채로 발견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